종교개혁의 배경이 되는 후기 중세는 기존의 권위와 이에 대한 반항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 시기의 교회는 세속권세를 아울러 지배하려는 교황청의 집요한 시도를 통하여 교황권의 우위가 계속적으로 선포되던 시기였으며, 이에 대하여 산발적인 비판이 있었다. 또한 세속군주들은 이와 반대로 교
군주에게 충성의 의무를 행하는 봉건귀족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성직자가 세속적인 질서 속에 편입되면서 교회는 부패하게 되고, 이러한 교회의 세속화를 막기 위한 개혁운동에 클뤼니 수도원이 앞장을 섰다. 개혁적인 수도사들은 성직자의 결혼과 성직매매라는 타락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세속
Ⅱ. 종교개혁의 배경
1. 종교개혁 시기의 유럽
당시 유럽의 중심은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였다.
다시 말하자면 전 유럽의 막대한 권력과 부는 이들 몇몇 소수의 나라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림잡아 인구 4백만의 영국, 인구 8백만의 스페인, 1천 6백만의
교회와 식민지 정부의 결합에 대해 다룰 것이다.
이베리아(Ibería)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다. 그렇지만 반도의 통일 과정에 양 국가의 원조격인 레앙(Leao)과 까스띠야(Castella)가 있었다. 이 왕국의 알폰소(Alfonso Ⅵ) 국왕은 이슬람
그들의 전역 정복의 실패가 이탈리아 반도의 정치적 통일의 종말을 암시했다고 기술한다. 이는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형성이 서로마 제국의 붕괴(476)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탈리아 반도에는 그 곳의 정치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제 3의 정치세력이 바로 교회였는데, 동로마 황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