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하였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또
창덕궁 건조.
9대 임금 성종이 주거공간의 보완 목적으로 창덕궁 옆에 창경궁을 지음.
임진난으로 인해 궁궐이 모두소실, 광해군 때에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됨. 인경궁과 경덕궁(경희궁) 창건, 고종 때는 경복궁 중건됨.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5대 궁궐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덕수궁.이상 5개의 궁을 말한다.
ⅱ)‘궁궐’(宮闕)의 의미.
임금님이 나라 일을 보시던 처소가 정전(正殿)과 편전(便殿)들을 비롯한 건물들이다.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대신들이 모여 정사를 의논하던 장소나 하늘의 운행을 살피고 임금님의 학문을 돕고,궁을 지
궁궐을 침범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이곳에서 도망치기도 하였으며, 고종 21년 갑신정변(甲申政變)으로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체결되었다. 창덕궁의 마지막 주인인 순종은 1929년까지 이곳의 주인으로 살았으나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