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인정전에서 체결되었다. 창덕궁의 마지막 주인인 순종은 1929년까지 이곳의 주인으로 살았으나 일제강점시기 창덕궁이 놀이공간과 통감부 간부들의 연회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시기 궁궐의 여러 전각들이 헐려 자동찻길로 변하는 등 많은 건물들이 위치와 용도
창덕궁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
창덕궁창덕궁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1405)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창건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완성되었다. 그 뒤 태종 12년(1412)에는 돈화문이 건립 되었고 세조 9년(1463)에는 약 6만2천평이
인정전(仁政殿)•선정전(宣政殿)•소덕전(昭德殿)•빈경당(賓慶堂)•여일전(麗日殿)•정월전(淨月殿)•옥화당(玉華堂)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敦化門)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창덕궁이 지어지기 전에 경복궁이란 커다란 궁이 있었으나 태종은 왕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은 조선 영조 20년(1744) 불탄 것을 이듬해 복구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3.창덕궁(昌德宮)의 건물
1) 돈화문(敦化門)
보물 383호로 지정되어있는 돈화문(敦化門)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우진각지붕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
다포(多包)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짜 올린 공포(拱包). 주로 조선 전기부터 많이 썼다.
건물이다. 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