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대향로가 출토되기 이전에는 사실상 알려진 예가 없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승반과 하나의 다리를 대신하여 머리를 들어올린 용을 조각하여 받침을 삼았고, 그 위에 산을 표현하였으며,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서 있어 외형적으로는 신선사상의 지향처인 삼신(三神)산을 가리킨다는 박산향
1. 시작하기 전에
출발
두 번의 사전모임, 치열한 답사지 선정, 철저한 사전조사 끝에 2009년 4월 18일, 드디어 우리 9조는 부여로 떠난다. 답사지 선정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사전조사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난 뒤여서 인지, 답사에 대한 큰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다.
금동대향로에 조각된 주악상과 무령왕릉의 동자상에서 보여지는 머리형태가 다른 고구려나 신라의 유물이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 머리모양은 앞머리를 정수리 부분까지 삭발하고 뒷머리는 길게 하여 뒤로 늘어뜨린 후 오른쪽으로 몰아 오른쪽 귀 옆에서 묶은 양식
백제는 B.C 18년 온조가 건국하였다. 고구려, 신라와 함께 한때 한반도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삼국 중의 하나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크고 넓은 영토 확장으로 한반도 북쪽 지역뿐만 아니라 만주 지역으로 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한민족의 기상을 널리 떨쳤던 고구려와, 끝내 삼국을 통일하여 지금
천도 후 성왕은 중앙관제의 정비와 지방통치조직을 강화하였으며,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공격으로 백제는 한강유역을 다시 상실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성왕은 신라에 대해 보복공격을 단행하다가 관산성에서 신라군에 패하여 전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