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는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보협인석탑, 경북 서산의 고리사석탑, 그리고 계단형식의 금산사사리탑등도 고려시대 특수형식의 귀중한 석탑으로 남아 있으며 호암미술관 소장인 금동대탑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공예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작품으로 유명하다.
금동대향로가 출토되기 이전에는 사실상 알려진 예가 없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승반과 하나의 다리를 대신하여 머리를 들어올린 용을 조각하여 받침을 삼았고, 그 위에 산을 표현하였으며,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서 있어 외형적으로는 신선사상의 지향처인 삼신(三神)산을 가리킨다는 박산향
금동대향로에 조각된 주악상과 무령왕릉의 동자상에서 보여지는 머리형태가 다른 고구려나 신라의 유물이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라는 것이다. 이 머리모양은 앞머리를 정수리 부분까지 삭발하고 뒷머리는 길게 하여 뒤로 늘어뜨린 후 오른쪽으로 몰아 오른쪽 귀 옆에서 묶은 양식
Ⅱ. 본론
1. 14세기 시대적 상황
고려는 “918년 왕건에 의해 건국되었고 34대 공양왕(恭讓王)까지 475년간 존속했다. 신라 말에 송악(松嶽:開城)의 토호(土豪)였던 왕건은 태봉(泰封)의 왕인 궁예(弓裔)의 부하로
2. 14세기 금동보살상
14세기 고려시대의 불상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전
Ⅰ. 개요
리꾀르는 사학을 탐구로서만 이해하는 자에 반대하듯이, 이야기 없는 사학을 주장하는 불란서 아날 역사학파와 신실증주의 역사 이론을 반대한다. 이들 학파는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역사를 규명하기 위해 놀랍게도 정치적 역사를 배제시켜버렸다. 그리고 이 학파는 역사 서술가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