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이다. 그래서 사형폐지 운동에 대해서 다른 식으로 생각도 안하고 무조건적으로 반대를 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작가 조성애와 김용제의 마지막 사형수라는 책을 읽고 내 생각과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복한 가정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김용제 등을 들 수 있다.
김종한(1916~1945): 호는 을파소(乙巴素)이고 함북 경성 출생이며, 일본대학 예술과 졸업. 1939년 「문장)」지에 ‘귀로(歸路)’ ‘고원(故園)의 시’ ‘할아버지’ 등이 추천되어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1942년 「국민문학」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친일문학자로 전향하였다
김용제, 김상용, 노천명, 김동환, 이하윤 등)이 같은 제목으로 실었는데, 여기서‘님’은‘일본천황’을, ‘부르심’은‘징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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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품 활동
① 시작 활동
김상용은 1930년에 처음으로 『동아일보』에 시 「無常」과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구나」등을 선보였고, 이어 「나」(詩苑 1호)
이후, 장혁주와 김용제는 일본어로 글쓸 것을 주장한 반면, 한효와 임화는 조선어로 창작할 것을 주장했다. 즉, 김사량은 이런 조선의 문학계 내부에서 일본어 글쓰기에 대한 찬반논란 분위기로 인해 천마를 통해 일본어 창작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창씨개명 비판이다.
김용제 사형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우리나라의 살인 범죄 발생율이 30%이상 상승했다는 결과와 영국에서 1966년 사형제를 폐지한 후로 살인범죄 발생율이 60% 이상 상승했다는 결과과 있다. 이에 따르면 사형제는 범죄 발생율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며 범죄자들의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