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명사의 대열에서 김활란은 빼놓을 수는 인물이다.
그러나 교육·여성계에서 그가 누렸던 명성과 지위만큼이나 일제 말기에는 교육·종교계 인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친일 행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물론 일제하애서 그가 범한 반민족 행위 때문에 그의 공헌, 그에
여성명사의 대열에서 김활란은 빼놓을 수는 인물이다. 그러나 교육 여성계에서 그가 누렸던 명성과 지위만큼이나 일제 말기에는 교육.종교계 인물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친일 행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물론 일제하에서 그가 범한 반민족 행위 때문에 그의 공헌, 그에 대
활동하였다.
1920년대 여성운동계의 또 다른 큰 변화는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시작에서 찾을 수 있다. 20년대 중반은 ‘조선노동총동맹’과 같은 사회주의 단체가 결성되던 시기였는데, 여성계는 ‘조선여자동우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시작하였으나 1927년 ‘신간회’의 일원인
학교 근무
8.15이후 이화여대 총장직 등 여러학교의 이사장을 역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한부인회, 주부클럽연합, YWCA
등 여성단체를 설립하고 회장 등의 임원직을 역임
6·25 때는 공보처장, 1965∼70년에는 대한민국 순회대사,
한국아시아반공연맹 이사 등 정치·외교활동
1963년 대한민국장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여학사협회, 대한부인회, 주부클럽연합회, YWCA 등 여성단체를 설립하고 회장 등의 임원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정부수립 직후에는 유엔총회 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고, 6 25 때는 공보처장, 1965 70년에는 대한민국 순회대사, 한국아시아반공연맹 이사 등 정치 외교활동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