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경국민정부란
① 신해혁명 직후 손문을 임시대통령으로 한 중화민국 임시정부 (1912년 1월∼13년 12월)
② 장개석이 수반이 되어 좌파(左派)의 무한 국민정부에 대항해서 남경에 수립한 국민정부 (1927∼49)
③ 양홍지를 수반으로 하여 일본의 앞잡이 구실을 한 중화민국의 유신정부 (1938∼40)
④ 왕
잊혀진 홀로코스트 남경대학살
공식적으로 오천만 명의 희생자를 냈고 그 중 민간인의 비율이 50%를 넘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단기간에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기록한 장면은 남경대학살을 제외하고도 많다. 영국은 드레스덴 공습에서 하룻밤에 22만 5천명, 미국은 도쿄공습(8만~12만 추산)과 2차례의
장악했다.
3.난징전투
중일전쟁이 발발하던 1937년
12월 9일 부터 12월 13일
사이에 일어난 전투
남경전투전말
12월 9일 무고한 양민 보호와
유물보호를 앞세워
항복 요구
12월 10일 난징에 폭격 시작
12월 11일 장제스 총통의 퇴각명령
12월 12일 일본의 난징점령
12월 13일 남경대학살의 시작
북벌에 의한 전국의 통일은 손문 이래 國民黨의 일관된 목표였다. 1925년말부터 수차례에 걸쳐 북벌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장개석은 중앙집행위원회에 제출한 ‘정군숙당준기북벌안[整軍肅黨準期北伐案]’에서 국민군과의 연합, 손전방군의 중립화, 호남 ․ 강서 군사세력과의 공수동맹(攻守同盟)
ⅱ. 류타오거우 사건
만주 침략을 위해 일본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중심으로 <만몽영유계획>이 모의되었다.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 류탸오거우에서 만철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장쉐랑 군대의 소행으로 몰아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일본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