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류타오거우 사건
만주 침략을 위해 일본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중심으로 <만몽영유계획>이 모의되었다.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 류탸오거우에서 만철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장쉐랑 군대의 소행으로 몰아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일본 관
일본과 일본군들이 벌인 근대 이후 집단 성범죄는 대략 이렇다. 1931년 만주사변 당시 일본군은 해군에 처음 위안소를 개설(1932)하고, 육군에서도 ‘위안부단’을 조직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37년 본격적인 중국 침량 개시 후 인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변인 남경대학살 당시에는 위안
일본은 국제 연맹을 탈퇴한다.
2) 중일 전쟁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일전쟁부터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처음에는 일본군이 순식간에 베이징을 점령하고 더나아가 중화민국수도였던 남경을 점령한다 거기서 일본군은 남경대학살을 저질러
중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노구교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 , 일본이 이 사건을 전쟁 발발의 구실로 삼아 본격적인 중국 본토 침략이 발생함
난징 대학살중국 본토에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한 일본은 상해를 점령하고 국민정부의 수도 남경을 향해 진격
남경의 중국군은 결사항전을 결심하였으나 무참히
침략전쟁, 패전, 홀로코스트 등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한 공통점이 있지만 역사에 기술되는 양상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역사교과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新日本史(신일본사)』
일본은 대군을 투입하고, 1937년 말에 수도 남경을 점령했다. 그때 일본군은 중국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