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경국민정부란
① 신해혁명 직후 손문을 임시대통령으로 한 중화민국 임시정부 (1912년 1월∼13년 12월)
② 장개석이 수반이 되어 좌파(左派)의 무한 국민정부에 대항해서 남경에 수립한 국민정부 (1927∼49)
③ 양홍지를 수반으로 하여 일본의 앞잡이 구실을 한 중화민국의 유신정부 (1938∼40)
④ 왕
정부의 점령지역이 호남 ․ 호북 ․ 강서로 확대됨에 따라 점령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국민혁명군내의 대립이 나타났다. 장개석과 당생지 사이의 대립은 노골화되고 있었으며, 북벌전선 확대에 따른 재정적 압박이 가중되었다. 이 가운데 장개석의 독재에 대한 반발이 점차 나타나고 있었다.
Ⅰ. 서론
신해혁명 이후 중국인들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국가적 통합이었다. 청조(淸朝)가 무너진 이후 점증하고 있던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과 군벌들의 발호는 중국의 존망 그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자주적이고 통일된 독립국가의 건설은 다른 어떤 가치의
정부(武漢政府)의 최고지도자로 국공합작(國共合作)의 중국국민당을 이끌었다. 1932년 장개석(張介石)과 타협하여 국민정부 행정원장이 되었고, 1938년 국민당 부총재에 취임하였다. 그 후 중일전쟁으로 중경(重慶)을 탈출, 하노이로 피신하였다가 1940년 일본군 점령하의 남경(南京)으로 돌아가 화평구국(
남경(南京)에서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선출하여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수립했다. 미야자키 마사카츠 저, 오근영 역, 「하룻밤에 읽는 중국사」, 랜덤하우스 중앙, 2004, pp 253,254
하지만 초기 중화민국 체제라 할 수 있는 남경정부는 군사력에서, 또 지지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