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관 사이에서 살아난 카트린’은 생과 사 사이의 야누스적인 출생비화만큼이나 야누스적인 인생을 살아온 여걸이다.
장 오리외의 카트린 드 메디치에 대한 평가는 서문만을 읽어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는 때로는 천사같고 때로는 악마같은 카트린을 경배했다. 때문에 나 또한 장 오리외의
Ⅰ.여는말
'여인 천하’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가톨릭교도인 카트린 드 메디치는 딸 마고를 신교도인 나바르의 앙리와 결혼시킨다. 그러나 결혼식이 임박할 즈음 앙리의 어머니 잔느는 자신들이 제시한 조건이 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혼에 대해 결정을 제고하려고 한다. 이에 까트린느
의 세 아들이 차례로 집권하는 가운데 왕권이 약화됨으로써 아주 심각한 국가적 위기가 있었던 기간이기도 하였다. 앙리 4세 [Henri IV, 1553.12.13~1610.5.14] 는 정치적 지혜를 발휘하여 1598년 낭트 칙령 1598년 4월 13일 프랑스의 왕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으로써 평화를 회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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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 되었고, 츠빙글리와 칼뱅에 의해 발전된 개혁주의 신학 운동은 칼뱅과 화렐의 고국인 프랑스에서도 전개되었다. 독일에서 아우그스부르구 종교화약으로 인해 잠정적이나마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불란서에서는 신교와 구교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