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후의 상황에서 연합국이 전쟁의 결과를 결산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기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같은 난제를 풀어 갈 능력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소련뿐이었다. 그렇지만 두 나라가 대등한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은
체제하에서 유일한 정당이었으며 당의 지도라는 관점에서 당, 국가 행정기구, 군부, 국가보안위원회(KGB), 기타 사회의 모든 단체를 장악하는 권력중심기구였다. 이러한 소련 공산당의 해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개개의 소련 공산당 최고지도자들의 거취가 문제되는 것이 아
냉전시대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양극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냉전시대에 소련이 한 불록 고립주의로 끝을 맺은 데 비해, 미국은 범세계적인 규모의 진정한 초강대국으로서1)팍스아메리카나 기술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룩한 점이었다.
미소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진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국제정세의 변화가 3당합당에 미친 영향을 실제적으로 살펴보면 합당의 주요 행위자들이 한결같이 정계개편의 근거로 급변하는 세계질서를 들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2000년대를 맞기 위한 국가경영구조가 필요하며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에 능동적
정책을 추진해왔다.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웠던 박정희 대통령이지만 통일을 위해 비밀리에 북한과 접촉해 7.4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전두환 정권에 이어 집권한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계기로 북방외교를 추진해 중국, 러시아 등 공산권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북한과는 남북기본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