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김사량’이라는 작가 혹은 인간에게 허락된 자리는 얼마 전까지 문단의 구석, 그늘지고 추운 자리뿐이었다. 일제시기에 문필활동을 했고 일본에서 등단했다는 이유로 그는 친일문학가라는 이름과, 월북했다는 이유로 월북작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각주구검(刻舟求劍)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준말]각주(刻舟),각선(脚線),각현(刻鉉)
[유사어]수주대토(守株待兎)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표시를 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어리석어 시세에 어둡거나 완고함의 비유.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노마만리>의 작가다.
그는 나약한 식민지의 지식인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중국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해 어려운 시대 참지식인의 역할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노마(駑馬)’라고 불렀다. ‘노마’는 어리석고 쓸모가 없는, 걸음이 느린 둔한 말-‘나귀‘라는 뜻이다. 이는 식민
노마만리>를 잡지에 연재하였다. 1946년 3월 25일 결성된 북조선예술총연맹의 국제문화국장직을 맡으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희곡 <뇌성>,<호접> 등의 희곡도 본격적으로 창작하였다. 희곡을 창작한 것은 그가 태항산에서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맹이 높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