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무엘상 27장 1~2절
다윗은 지금까지는 사울의 치하인 국내에서만 피신하였으나, 일절의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삼상 27:1a)” 라는 표현을 볼 때 그의 연약해져 가는 심리적 불안상태로 인해 국
다윗에 대한 질투심이 증대하여 다윗의 생명을 노린 것이 그의 신임을 잃은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인기는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넘어갔고 그는 이스라엘 역사의 과도기를 그린 왕으로서 그의 최후는 비참하였다.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그의 세 아들을 잃고 자신도 큰 상처를 입고 길보아 산에
다윗에 의해 정비된 완전한 군주 시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다윗 왕( 기원전 1004~ 965년경 ) 은 필리스틴 정복을 끝으로 군사 원정에 성공하고 주위 나라들과 우호 동맹을 조직하여 이스라엘을 강대국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이어서 그의 왕권은 이집트 변경과 홍해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확
다윗왕조”에 집중하였다. 종교사학적인 연구가들과 전승사학적 연구들, 사회학적인 연구가들이 그러하였다. 특별히 전승사학적 연구는 “전승의 시발점”을 “모세 종교의 야웨 신앙”으로 설정함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중앙에 위치한 “다윗 왕정”에 대하여 심각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1. 다윗 언약
언약적 관점에서 다윗 언약의 수립은 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잘 드러내 주며, 동시에 ‘메시야적 왕권’을 전형적으로 예언하였다. 히브리인들의 메시야 기대 사상은 규범적으로 다윗 왕가와 연관을 맺고 있다. 하나님 자신은 그의 왕권을 다윗의 왕권과 연결하신다. 다윗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