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읍 면동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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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 >
인천의 유래
고구려 시대에 매소홀이라 불리던 인천의 후기 신라의 경덕왕 16년 (757)에 이르러 소성현으로 바뀌었다. 경덕왕이 신라의 제도나 관직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편, 토박이 말로 되어 있는 땅이름을 모두 그 뜻에 해당하는 한자어로 바꾸
도시철도 역사, 환승센터 등 보행집결지와 연결될 수 있도록 함.
- 자전거도로
주거지로부터 대중교통수단과의 연계는 물론, 고용지역, 주요 공공시설, 생활편익시설, 공원, 도시철도역사, 환승센터 등을 이어주는 동선체계를 구축함.
송도신도시의 외곽순환 및 내부순환체계를 구축하여 배치간격
Ⅰ. 인천의 근대화시기 변모 양상
조선은 1876년 2월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맺으면서 개항을 결정했다. 이로써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면서 주변국들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부산과 원산에 이어서 인천의 개항까지 요구하였고 이에 조선은 1883년 1월 인천을 개항했다. 이어서 1883년 9
2. 배다리 지역사회 문제- 산업도로 건설
1) 인천의도시적 특성 - 시간적 압축과 공간적 팽창
☞우리나라 근대화의 특징 중에 한 가지겠지만, 인천은 서구의 근대도시가 오랜 세월을 두고 거쳐 왔던 과정을 단기간 내에 압축하여 경험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몸체가 급팽창
3. 인천 지역 이미지
우선 인천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지역의 이미지 혹은 정체성을 파악함에 있어 중요하다. ‘서해안에 있는 항구도시’, ‘동북아의 거점도시’, ‘개척적인 선구’지 등 다양한 설명들이 인천을 말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이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