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를 결정지은 것은 일본이 쿠릴제도를 포기한다는 것을 결정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조어대(센가쿠열도)의 경우, 1968년 국제연합의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의 학술조사 결과 이후 양측의 분쟁이 본격화되었다. 독도의 경우, 1952년 한국정부의 ꡐ평화선ꡑ 선포로 양측의 논쟁이 치열하
서론 (독도의 과거)
-독도영토분쟁의 대두-
1. 일본의 군사적 요청에 대한 독도 편입
오랫동안 대륙진출을 기도해 온 일본은 대륙진출을 위해 선결조건으로 한반도 병탄을 계획했다. 1895년 4월 17일 청․일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승리를 거머쥔 일본은 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대륙진
(1905) 러.일 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1905.9.5)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
-일본은 조선 보호 구실 보장
-남부 사할린 할양
-남만주 철도 부설권 획득
(1905.11.17) 조.일 을사 늑약 체결-조선외교부 폐지
-통감부 설치
-내각에서 편입이 결정된 독도, 시마네현
독도가 언급되지 않음
1952. 1. 18.
대한민국 정부는 ‘인접 해양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 일본 정부는 이에 항의, 대한민국 정부에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영유권을 부정하는 외교문서를 보냄. 이 때 부터
독도는 국제사회에 분쟁지역으로 보이기 시작.
1954. 9. 25.
일본 정부는 국제사
『숙종실록』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확인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도로부터 서북 85해리에 있는 무인도는 타국이 이를 점령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취가 없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 편입하여 다케시마라고 명명하고 시마네현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