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우리나라는 어려울수록 우리 한민족은 뭉치는 힘이 대단히 강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일본국을 이길 수 있는 힘의 바탕이 뭉치는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평상시에는 당파싸움으로 인한 파벌싸움이 있어도 국난에 당하면 하나로 뭉쳐 이를 극복해 나가는
전투에 패배하여 삭직되는 등 임란을 체험한 윤국형은 문소만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임진년 난리 후로 백성들이 모두 떠나고 흩어져서, 비록 대가세족이라도 모두 생업을 잃고 거지가 되어 돌아다녔으며, 여자들은 높고 낮은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적들의 손에 몸을 더럽힌 자가 몹시 많았다. 이
Ⅰ. 서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일본의 역사왜곡은 늘었고 우리는 우리 민족감정에 앞서 우리 민족정서에 크나큰 상처를 받고 있다. 우리 역사를 날조하고 침해하며, 반성해야 할 과거사를 합리화하는 이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발굴조사하고 그 내력을 파악해 우리 민족의 정체
동래성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신 조영규(趙英圭) 장군이 우리 선조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래성전투하면 송상현만 기억하기 쉽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명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왜군의 요구에 戰死易假道難(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고 답한 사람이기
동래성을 둘러싼 일본군들을 볼 수가 있고, 또한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서 절을 하고 있는 동래부사의 뒤 모습과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던지고 있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통해서 긴박한 상황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일본군의 깃발을 보면 가아도 라고 적혀 있는데 가아도란 우리에게 길을 빌려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