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당은 국자감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서민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향교와는 달리 서울에 있었다. 학당은 중앙에 설치된 관학, 국자감의 하위에 속하는 초중등학교 수준의 학교였으며, 성리학서인 대학, 중용, 논어, 맹자 등의 4서가 중요한 교육내용을 이루었다.
동서학당의 성립은 24대 원종 2년(1261)3월
Ⅰ. 개요
고려 건국 초기의 학교 교육은 전적으로 신라의 것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독창적인 학교제도를 확립하지 못하였으며 성종대에 이르러서야 고려왕조로서의 학교제도를 갖게 되었는데, 관학으로서 중앙에 국자감, 동서학당, 5부 학당, 지방에 향교 그리고 사학으로는 12도와 서당이 그 주종을
학당동서학당과 오부학당은 고려 중앙에 설치된 학교와 같은 중등수준의 학교이다. 다만 학당(學堂)에는 문묘(文廟)의 제가 없이 학생을 교육하는 장학의 기능만이 있었다. 동서학당은 24대 원종(元宗) 2년(1261)에 세워졌고 고려말 공양왕 3년에 이르러 동서학당이외에 삼부학당(三部學堂)을 증치하여
고려(高麗)의 학교제도는 관학으로서 중앙에 국자감(國子監), 동서학당과 후의 오부학당, 지방에 있는 향학(鄕學), (校), 그리고 사학으로서 십이도(十二徒)와 서당(書堂)등이 그 주종을 이루었다. 건국초기(建國初期) 고려(高麗)의 학교교육(學校敎育)은 전적으로 신라(新羅)의 제도(制度)를 계승(繼承)하
1. 고구려
고구려는 국초부터 문자를 사용하여 「유기」라는 100권의 역사책을 편찬했고 불교의 공인과 태학이라는 학교를 세워 유교경전을 가르친 고대국가였다. 불교가 군왕은 물론 민중의 교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데 반해 유교는 초기 군왕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귀족관리들에게만 국한된 학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