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그들의 후예가 된다. 이러한 논리는 이 나라들을 중국의 역사로 보는 데에 있어서 큰 타당성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세계 문명을 포괄적으로 다룬 역사가인 토인비는 ‘문명의 단위’를 ‘국가보다는 크고 세계보다는 작은 중간적인 범위’에서 구했다. 그러므로
국가가 공고화될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유기치의 사상적 밑거름이 되는 문명론에 대해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토마스 버클(Thomas Buckle)과 프랑소와 기조(Francois Guizot)의 영향을 받은 유기치는 『문명론지개략』에서 인류문명을 ꡐ야만ꡑ ꡐ반개ꡑ ꡐ
동아시아적 사유체계의 문화적 특질과 세계정서로의 편입 가능성에 대한 견해로 나눌 수 있다.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는 견해들 중에서 관심을 끄는 분야는 문명론적 입장과 경제학적 입장이다. 실제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의 미래를 불길하게 보는 눈은 드물었다. 60년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모든 분야에 걸쳐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일본은 섬나라라는 특성으로 인해 문화 전파가 늦게 이루어졌고 때문에 중국과 한국에 비해 뒤떨어진 국가로 머물러왔다.
그러나 삼국의 관계는 근현대사를 겪으며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에 성
확립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함양”
고등학교 국사
“우리는 유구한 역사를 거쳐 단일 민족 국가를 유지해 온 전통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중략) 따라서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계승하고, 나아가 민족 정기를 회복해야만 한다.” –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