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중국 측에 전한다. 이에 중국은 참전을 잠시 보류하나 결국 조선으로 출동하는 것이 중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10월 19일 중국군은 압록강을 건너게 된다. 또한 스딸린의 은밀한 명령에 따라 소련 공군 비행사는 중국 공군 비행복을 입고, 기체에는 북한 마크를 붙인 채 참전한다.
중국, 김일성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9월 19일 스딸린에게 전보를 보내 지원 요청을 하였다. 그 역시 소련군이 직접 개입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가 노린 것은 중국군의 원조를 구하는데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의 노림수대로 스딸린은 마오쩌뚱에게 요청전문
마오쩌뚱은 12일 정치국 긴급회의에서 소련의 그밖의 지원태세와 불참전의 손해, 참전의 이익 등을 들어 참전을 주장하여 저우언라이 등을 설득한다. 10월 13일 중국의 참전 결정이 스딸린에게 전보로 전해지고, 스딸린은 매우 기뻐하며 소련 공군의 지원도 은밀하게 행하였다. 10월 19일에 드디어 중국군
중국 국내 상황과 주관적 요소를 따져 스탈린을 견제하고 원조를 끌어내려 했으며, 스탈린은 적이 전 조선을 점령하면 죽국 동북에 안녕할 나날이 없고, 조선동지가 희생된다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철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소련은 조선 철수를 선언한 이상 재출병은 미국과 직접 교전하는 것과
주장하는 마오쩌뚱의 의견을 결국 따르게 된다. 모스끄바에 있던 저우언라이가 소련에 참전결정을 전하자 소련 측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10월 중순 이후 소련 공군부대가 중국 동부에 진주하며 유엔군과의 공중전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10월 19일 중국군은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