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람덕동은 원래 산아래에 있다 하여 산밑에몰(山底村)이라 했다는 기록이 경주김씨 보첩에 있다.
또 원래 담덕굴(淡德洞)이라 부르는데 람덕동이라 한것은 봉이 천리나 길게 날아 덕이 빛나는 것을 보고 아래로 내려와 그친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이렇게 부른다고 전한다. 또 남
어리(漁里)의 지명은 어촌(漁村)마을의 어(漁)자를 따서 어리라 하였다. 어리는 어촌마을, 금동마을의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금동(錦洞)마을은 원래 텃굴이라 부른다. 금동리라 한 연유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마을의 형상이 비단을 펼쳐 놓은것 같다 하여 금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1789년 호구
어리(漁里)의 지명은 어촌(漁村)마을의 어(漁)자를 따서 어리라 하였다. 어리는 어촌마을, 금동마을의 2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어촌(漁村)마을은 어릿물이라 하는데 그 뜻은 마을 뒷산에 삿갓봉과 꾸덕봉이 있고 옆으로는 황새등과 당산등이 있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황새등은 잉어형, 당산
청룡리(靑龍里)의 지명은 용담에서 청룡이 나와 마을 앞 돌운봉을 타고 승천하였다하여 청룡리라 했다고 전하며 또 마을 뒤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어 청룡리라 했다고 전한다. 청룡리는 화산, 사기정골, 사무실등, 양촌, 대촌, 안터 등 6개 자연마을로 되어 있었으나 화산마을은 범재미 마을이라 불렀는
가동리(可東里)의 지명은 가동(可東)마을의 가(可)자와 동막리(東幕里)마을의 동(東)자를 합하여 가동리라 하였다. 가동리는 가동(가곡)마을, 동막(동촌)마을, 사동(사기점굴) 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는동막과 사동은 6·25로 폐촌되고 가동마을만 남아 있다.
가동마을은 가장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