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맹자의 사상 가운데 정전론(井田論)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정전제도는 언제부터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형성연원을 밝히기 위하여 서술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본 논문에서 밝히고자 하였던 「맹자정전론과 정전제도의 사상적 연원」에 대한 서술이었다.
맹자도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고 잠시 제(齊)나라의 관리로도 일했다. 그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정을 베풀라고 조언했다. 그당시는 혼란기였기 때문에 제후들은 인정보다는 패도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인정에 바탕을 둔 왕도(王道) 정치를 역설한 맹자의 노력은 실패로
맹자도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고 잠시 제(齊)나라의 관리로도 일했다. 그는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정을 베풀라고 조언했다. 그당시는 혼란기였기 때문에 제후들은 인정보다는 패도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인정에 바탕을 둔 왕도(王道) 정치를 역설한 맹자의 노력은 실패로
맹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도덕적 요청으로서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도덕에 대한 의욕을 조장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사람으로서의 수양은 ‘욕심을 적게’ 하여 본래의 그 선성(善性)을 길러내는 일이었다.
왕도정치는 그러한 인심에 입각한 정치이
맹자도 BC 320년경부터 약 15년 동안 각국을 유세하고 돌아다녔으나, 자기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자 고향에 은거하였다. 제후가 찾는 것은 부국강병이나 외교적 책모(였으나, 맹자가 내세우는 것은 도덕정치인 왕도(王道)였으며, 따라서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