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
13세기 몽골제국의 등장과 함께 이른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형성되면서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흑해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북방노선이 주요한 교역 루트로 대두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이 북방노선을 통해 당시는 키타이(Cathay)로 알려졌던 지금
몽골군은 투항하는 남송군을 교대제로 포위하여 장기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송에는 강력한 해군이 여러 하천을 순항하며 감시하고 있었다. 몽골군은 이 수상전력에 대한 대항수단으로 몽골수군을 편성하게 된다. 몽골군은 5천척의 배와 7만명의 수군을 양성해 양양,번성의 포위선 상류와
몽골고원의 상황
- 몽골족이 언제부터 이곳에 거주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8세기 전후(중국의 唐代 전후에는 다른 여러 취락과 함께 돌궐의 세력 하에, 8세기 중엽에는 위구르에 예속되었고, 9세기 이후에는 위구르 대신 들어섰던 타타르의 지배하에 있었다.
- 그러나 타타르가 쇠망한 뒤에는 제
역참제가 신설되었으며, 물샐 틈 없이 칸막이되어 있던 문명과 문명간의 경계들이 허물어졌다. 동양과 서양이 통일되고, 지상의 먼 나라들간에 소통이 시작되던 그 대변혁의 시대. 유목민들이 칭기스칸의 깃발 아래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제국 건설의 열기 속에 열정을 불태웠던 결과에 대하여 인
몽골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다. 몽골인민공화국은 러시아식 헌법을 채택하였고 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이전에는 COMECON 국가들과 주로 교류하였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의 원조가 끊기고부터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과거 유일당이었던 몽골인민혁명당(Mongol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이 여전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