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인 활동으로만 이해를 했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번 학기에 <중국 근현대사>, <현대 중국의 시장과 통상> 수업을 듣고 있는데, 홍위병과 그와 관련된 문화대혁명은 한 번씩은 반드시 언급되는 사건이며, 그만큼 중국현대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사건들도 많았지만 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란 인물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었다. 그들의 일대기와 그들의 사상을 비교해보면 그들의 정책이 왜 그렇게 달랐어야 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개별 보고서의 주제를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라고 잡았다.
사상의 혁명 간섭 배제를 주장하면서 홍보다 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러한 내용은 행동으로 나타나 대규모 수리사업과 건설 사업 취소하고 대규모인민공사 축소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문예와 학술영역에서도 자유화를 허용하고, 계급화해와 협력 강조했다. 이에 마오쩌둥은 실용주의 노선, 즉 덩
중국을 사상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변화시킨 업적으로, 다른 하나는 광범위한 인간적 희생과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과오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는 중국 근현대사 연구에서 여전히 논쟁거리이며, 이러한 논쟁은 마오쩌둥과 그가 이끈 중국 공산당의 정치와 경제 체제, 그리고 대공문화대혁명
마오쩌둥사상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한다는 입장
19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6중 전회에서 타협점을 찾음
*‘마오쩌둥 동지는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 전략가, 이론가다. 그가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전 생애를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