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계통(중국과 다름)- 무문토기와 반월형석도 출토
(3)경제-벼농사 시작, 농경비중 증가
(4)사회-지배와 피지배 관계 성립(부족간의 정복전쟁),족장들의 권한 강화(계급지배사회 출현; 지석묘)
(5)청동기인은 신석기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사회의 주인공으로 등장, 우리 민족의 주류 형성
반월형석도, 반달돌칼, 돌낫, 괭이나 돌삽 등의 농경도 구가 확인되고 농경이 보편해 됐기 때문에,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청동기 시대라 하겠다. 하지만, 선사의 농업 형태가 현재와 같은 수전(水田)이었냐는 논란이 많다. 이것은 인간의 활동공간을 결정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청
반월형석도)]·돌살촉[石鏃] ·숫돌[砥石] ·가락바퀴[紡錐車] 등이 있다. 석재는 점판암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집터에서는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단계의 석재들이 널려 있어 석재 가공의 기술적인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유적은 지금까지 조사된 한국 집터유
수 있다.
수확작업에서의 변화는 낫의 확대보급과 관련이 있다. 낫이 쓰이기 이전 시기인 청동기시대의 수확구는 반월형석도였다. 그러나 철기의 보급이후 석도를 대신하여 손칼이 보편적으로 낫과 함께 사용되다가 4세기 이후에 이르러 비로소 수확도구로서 낫이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였다.
반월형석도 등 중국인의 생활 도구를 받아들였다. 이 중국의 농경 문화가 들어올 당시의 전문 토기인 들의 노인이나 유식자들(?)은 외래 문화 때문에 민족의 전통 문화가 뒤흔들린다고 개탄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온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변화된 신석기 후기 문화는 그대로 전문 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