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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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당진 요약본
1. 문제제기
당진 자개리 유적지는 유적발굴에서 움막의 형태와 무덤도자기를 비롯한 여러 유물 등이 송국리 문화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청동기시대의 유적지라는 것은 확인되었으며, 유적의 공간분포 밀도가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선사인의 공간이용의 변화를 알아보고, 특히 청동기 시대 유적의 입지를 지형과 관련시켜 보겠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당진 자개리 유적지를 지형학적인 관점위에서 그 지역의 기후, 지질, 지형, 토양, 수문 등 자연환경이 이 지역의 선사인의 경작지와 주거지 등의 인간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주변 지역과의 상호관계 특히 자개리 1구와 2구 지역의 공동체의 연관성과 생활양식을 비교해보고,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인간 활동의 공간변화를 말하겠다. 또한 아직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 지역의 기후단구에 대한 가능성을 논하도록 하겠다.
2. 선사 및 고대의 농업
- 농업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이다. 농경을 농경시작 이후의 사회문화적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 전혀 다른 차원의 생활양식으로 파악하고, 신석기혁명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선 사 및 고대 유적지를 알아봄에 있어서 농업양식의 변화와 청동기 시대의 농업의 특색을 알 아보는 것은 선사인이 지형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기본적 지식이라 하 겠다. 특히 벼농사의 형태와 비중은 어떠하였으며, 그 재배지는 어디였는가에 문제는 유적의 입지유형과 더불어 유적지의 지리적 관점에서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에 한강유역과 중부지방에서 농사가 이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 하 지만,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특징으로 반월형석도, 반달돌칼, 돌낫, 괭이나 돌삽 등의 농경도 구가 확인되고 농경이 보편해 됐기 때문에,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청동기 시대라 하겠다. 하지만, 선사의 농업 형태가 현재와 같은 수전(水田)이었냐는 논란이 많다. 이것은 인간의 활동공간을 결정짔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청동기는 주석(sn)을 20~30%나 넣은 백동질로서 부러지기가 쉬워 청동제품들은 사회 적 지위나 권위의 정도를 표현해주는 역할 만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실생활 특히 농업생산을 위한 제품으로서는 한계가 있어 석기를 더욱 연마하고 다듬어 농기구로 사용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양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석기로 만든 농기구가 사용 가능한 토양을 선정 하고, 청동기를 이용하여 만든 농기구도 그 성질이 무르기 때문에 모래가 80% 이상인 황갈 색 사질토양 같은 토양에서는 사용이 가능하였다.
마지막으로, 농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소는 홍수의 가능성이다. 비록 생산성이 높은 토양을 갔고 있는 땅이라 할 지라도, 자연을 극복하는 힘이 현재보다 부족했던 인간으로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수의 위험이 낮은 자연제방이나, 선상지, 단구 같은 곳을 이용하였고, 배후습지나 범람원은 그 이용가능성이 적었을 것이다.
3. 유적지의 입지
-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당진 자개리 유적지는 해발고도 약 40~60m 내외의 낮은 침식성 구릉지에 주거지와 무덤이 집중적으로 있으며 그 아래에는 기후단구로 보이는 면이 있고, 해발고도 약 100m의 배후산지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곡저평야를 중심으로 양쪽 구릉지 에 유적 1, 2구가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는 삽교천으로 연결되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완전한 분지는 아니나, 그리 높지 않은 산지로 둘러 쌓인 분지형태를 보이고 있다.
4. 지형의 이용과 농업 형태
- 자개리 지역에서 살았던 선사인들은 크게 침식 구릉지의 이용과 단구면의 이용 그리고, 곡저평야의 이용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 우선 침식 구릉지에서 발견된 주거지와 무덤 도랑, 돌화살촉, 그리고 토기를 봤을 때 구릉지는 집단 공동체 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으 로 이용하였으며, 단구면은 전작의 농업을 하는 공간으로, 곡저평야는 석기류의 농기구를 이용하여 벼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 당진 자개리 지역에서 유적이 출토된 지역이 기후단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유는 개석된 곡저평야옆으로 현재는 미약하지만 하천이 흐르고 있고, 논 옆의 양쪽 단의 높이 가 비슷하면서 교회까지 지형면이 연결되고 있다. 단구애로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지 형들이 곳곳에 있었으며, 단구애 밑에 충적애가 쌓여 있었다. 그 지형면은 현재 고추밭과 비닐하우스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택이 입지해 있다. 또한 유적지와도 연결되어 있으나, 유적지는 그 면보다는 높은 침식된 구릉지에서 발견되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유적의 입 지와 이용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당일에는 장비와 시간의 부족으로 기후단구 의 확실한 증거를 찾지는 못하였다. 또한 원력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논바닥을 트랜치한 결과와 화분분석 그리고 더욱 자세히 조사한다면 ‘기후단구일 것이다’라는 가설 은 검증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토양 분석까지 더해진다면 자개리 청동기 유적지와 더불어 선사인들의 생활상과 생활 반경은 물론 지형의 이용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