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의
① 오스만 제국 최초로 패배 국가 자격으로 조약에 조인
② 오스만 제국 건설 이래 최대의 많은 영토적 손실
③ 오스만 제국 유럽에서의 영향력 완전 상실(유럽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서 완전 탈피)
④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동방문제에 부딪히게 됨(발칸 지역 세력의 진공상태)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 반도는 수세기 동안 끊이지 않는 민족 갈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어왔다. 비단 국가 내부의 민족적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발칸 반도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에 따라 주변 열강들의 개입도 끊이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통로, 과거 동 로마와 서 로
발칸분쟁사 김성진 1997 우리문학사 P 3~4
유고의 북부지역에 거주하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유럽문화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었고, 남부의 나머지 민족은 아시아적 전체국가인 오스만 터키의 재배를 받음으로써 유럽과 아시아라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분할되어 삶을 영위해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14세기 후반 세르비아의 두산황제 두산황제가 이룩한 국가는 세르비아 인이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민족 국가의 표본이 되었다. 따라서 그 이후 세웢진 세르비아 인의 국가는 반드시 두산 제국의 모습을 따르려고 했다.
-김성진. 발칸분쟁사. 우리문화사. 1997에서 발췌 -
‘유럽의 화약고’ 라는 수식어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발칸 반도의 분쟁사는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발칸 유럽의 과거는 역사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동안 억제되어 왔던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욕구들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후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