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민족문제의 전개과정과 Tito에 대한 비판 ★ 유고슬라비아 민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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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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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고민족문제의 전개과정과 Tito에 대한 비판
목 차
1. 서론
2. 유고슬라비아 안의 민족 문제
(1) 유고슬라비아 안의 남슬라브족의 기원
(2) 산스판테노 조약과 베를린 조약
(2) 대 세르비아 주의
(4) 유고슬라비즘
3. 유고내의 공산주의의 전개(Tito를 중심으로)
(1) Tito의 생애
(2) 민족적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원동력
1) 군사상의 작전에 있어서의 농민들의 지지
2) 정치적 역량
4. 민족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Tito의 역할
(1) 제 3세계 동맹 결성과 소련의 간섭 배제
(2) 민족 문제에 있어서의 완충 역할
5. Tito의 죽음과 민족문제의 심화
(1) 내부 분열
(2) 코스보 사태
(3) 코스보 사태 후의 유고
6. Tito 정권하에서의 내부적 모순
(1) 권력의 독재
(2) 비판기구 부족
(3) 자치구의 활성화 부족
7.결 론
1. 서 론
5개의 민족, 4개의 언어, 3개의 종교 이 말은 1918년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생겨났을 때의 구성원, 언어 종교를 뜻하는 말이다. 인종은 같지만, 역사 속에서 발칸 반도는 여러 세력들의 세력 다툼이 많았던 장소이기 때문에 그들 간의 문화적 차이란 엄청나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외세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힘이 필요했고, 그것이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로 탄생하였다. 티토 사후에 훗날 1991년 유고슬라비아는 슬로베니아 내전을 시작으로 크로아티아 내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코소보 내전으로 발전 하면서 마침내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코소보로 각각 분리 독립된다. 독립과정에서 수많은 전쟁과 불협화음으로 많은 이가 희생되었고 강대국과 UN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왜 이렇게 다른 민족들이 하나로 뭉쳐야만 했고, 뭉칠 수 밖에 없었나라고 하는 점이다. 그 점에 대해서 남슬라브족권의 변천사를 통해 알아보고, 이러한 복잡한 관계의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 노력한 Tito의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리고 Tito의 사후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을 겪게 되고, 결국 분열되고 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Tito의 사후 왜 이렇게 쉽게 분열되었는가에 대한 문제를 Tito정부가 가졌던 모순점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2. 유고슬라비아 안의 민족 문제
(1) 유고슬라비아 안의 남슬라브족의 기원
기원전 2세기 로마의 보병 군단이 지금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헤르체비고나, 몬테네그로로 알려진 일리리아로 쳐들어가, 그 곳에 새로운 영토로 일리리쿰을 만들어 내고, 그 쪽의 민족들을 이 안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서로마가 멸망하고, 동로마제국의 세력권이 약해지자 일리리쿰에 터를 잡게되었는데 동부와 중부에는 세르부족이, 보스니아족은 서쪽으로, 몬테네그로족은 남쪽 아드리아 해안 지방으로, 크로아트족은 달미치야 해안 지역과 북쪽에 자리를 잡았고, 슬로베니족은 더욱 북쪽으로 올라갔다. 유고슬라브족 대부분은 일리리쿰 변두리에서 예전의 유목생활을 계속 유지하였으나, 북서쪽의 일부 크로아트족은 로마인들과 피를 섞으면서 문명화되어 갔다.
8세기말 샤를마뉴의 시기 때, 샤를마뉴는 달미치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사람들에게 카톨릭을 강요하였고,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는 방치했다.
크로아트족은 헝가리족의 침략을 받아 1102년부터 800여년동안 헝가리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14세기 후반 세르비아의 두산황제 두산황제가 이룩한 국가는 세르비아 인이 언젠가는 이루어야 할 민족 국가의 표본이 되었다. 따라서 그 이후 세웢진 세르비아 인의 국가는 반드시 두산 제국의 모습을 따르려고 했다.
-김성진. 발칸분쟁사. 우리문화사. 1997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