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전선운동과 무장유격활동, 국내 공산당 재건운동 및 혁명적 노․농운동의 전개과정, 그리고 건국동맹의 성립 등이 그것이다.
아직 좌우익 노선의 분립이 뚜렷하지 않았던 시기에 일어난 3․1운동을 공화주의를 지향한 부르주아계급이 주도한 그야말로 거족적 운동이었다고 보는 데는
운동의 개념
1905년의 한국보호국화와 1910년 한국병합으로 인해 국권회복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이 여러 계열(유교적인 복벽주의, 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 부르주아민족주의좌파,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의 정치사상과 독립전쟁론, 의열투쟁론, 노동운동론, 대중적 정치투쟁론, 실력양성운동론으로
해방에 중점을 두면서도 '민족주의자를 광범위하게 포섭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여운형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 견지하는 기본적인 정치적 입장이다. 건국동맹은 조직 확대, 치안대, 식량대책 기구 조직의 구체화, 후방교란, 해외 민족해방운동단체와의 연결 등에 치중하여 활동하였다. 중앙
운동을 지도한 세력이었으며, 나아가 광범한 반제국주의적 운동세력을 통일전선의 형태로 결집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중심이 된 세력이기도 하였다.
사회주의 운동이 독립운동선상에서 중심에 서게된 시기는 1920년대 무렵이다. 1910년대까지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던 세력은 부르주아민족주의자
운동의 분열을 비판하면서 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상단체의 통일을 주장하고, 자연생장적 투쟁을 지양하기 위해 실제 투재을 통한 대중의 조직과 교육에 주력하며,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의 전환과 민족주의좌파와의 적극적인 제휴를 주장하였다. 이준식, 위의 책, 164~168쪽.
를 발족시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