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현대 이라크와 쿠르드족 문제
쉐이크 아흐마드 바르자니(Shaikh Ahmad Barzani)는 쿠르드족 독립운동을 주도한 또 다른 민족주의자였다. 1930년부터 현재까지 바르자니 가문은 쿠르드민족주의 운동에서 중심역할을 해왔다. 1940년 쉐이크 라티프가 주도하는 명망가와 지식인들이 결성한 브라야티(Brayati)와
이라크 입헌군주제의 도입: 파이살의 왕위등극
이 회의의 결과로 첫째. 대 이라크 위임통치를 ‘동맹조약’의 체결로 대치할 것, 둘째. 1920년 7월 시리아에서 폐위된 ‘파이살’을 이라크의 왕으로 옹립할 것을 결정한다. 당시 ‘파이살’은 아랍민족주의의 지도자로 아랍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
된 이라크와 그 정권을 이끌어 온 사담 후세인이 그 분쟁사건의 중심이 되어왔다. 사담 후세인의 집권 이후 그의 강경 노선과 함께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고, 군사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이라크의 대외정책은- 주로 미국의 입장이지만- 어찌됐건 세계평화의 존폐를 운운하게 되는 입장에 있게 되었다.
Ⅰ. 머리말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 붕괴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신정부 수립 과정이 여러 가지 상황 으로 인해 당초 계획에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이라크인 포로를 비인격적으로 학대하는 미군의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세계의 여론과 이라크 국민들이 자유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