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와 영조의 ‘임오화변’이다.
임오화변은 영조가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사건으로 그 내용뿐 아니라 방법까지도 흔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 만큼 최근에는 영화 <사도>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영화를 통해 일반적으로 임오화변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고정
1. 본문요약
사도세자. 아버지의 손에 의해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자. 이것이 사도세자를 상기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사도세자는 친아버지에 의해 그토록 비참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어야 했는가. 본 논문에서는 그 이유를 각 인물들의 정신분석학적 입장을 통
들어가며 - 조선의 왕자 ‘사도세자’ 그는 패륜아인가??
조선의 왕자 사도세자(1735~1762), 그는 1735년 영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영조의 막대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인물이다. 영조는 세자를 위해서 친히 교육서(『어제상훈』)를 만들기도 했고, 2세부터는 세자로 책봉하더니 3세부터는 직접 관여하
1. 조선시대의 세자
차기 왕위 계승권자. 왕세자․세자․세자궁․동궁(東宮)․춘궁(春宮)․정윤(正胤)이라고도 하며, 저하(邸下)라는 존칭어로 불렀다. 기원은 왕위계승이 부자세습제도로 확립되면서 시작되었다. 태자는 부왕의 재위 기간 중 책봉의식을 거쳐 결정되는데, 자격조건은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조숙하고 총명한데다 영조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게다가 호기심이 많아 지난날의 정쟁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기존 질서에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탕평책에 따라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인과 노론 명분 속에 미약한 권력을 유지하여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