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 있었던 많은 사건 중 일부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 뚜렷하여 찬반의 여지가 없기도 하지만, 일부 사건들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불가피한 선택 때문에 형성되기도 해서 찬반의 범위를 넘어서기도 한다. 그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사도세자와 영조의 ‘임오화변’이다.
임오화변은 영조가 아들
들어가며 - 조선의 왕자 ‘사도세자’ 그는 패륜아인가??
조선의 왕자 사도세자(1735~1762), 그는 1735년 영조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영조의 막대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인물이다. 영조는 세자를 위해서 친히 교육서(『어제상훈』)를 만들기도 했고, 2세부터는 세자로 책봉하더니 3세부터는 직접 관여하
세도정치
1. 세도정치의 의미- 종래의 일당전제마저 청산되고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가문일변도의 정치형태로서, 정권의 사회적 기반을 결여하였을 뿐 아니라 붕당 정치의 완전한 파탄을 의미 변태섭(1996), 『한국사통론』, 삼영사, p.357
2. 직접적 계기: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시파, 벽
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한 여인의 피 어린 기록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글의 작자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5)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과 한산 이씨 사이의 둘째딸이며, 1735년 6월 18일 오시(午時)에 반송방 거평동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9세에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思
Ⅰ. 들어가며
18세기가 한국사에 있어서 중세적 질서의 동요와 그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대책과 수정이 모색되고 시행되던 변화의 시기였다고 함은 이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현상에 관한 연구는 주로 사회경제적인 면이나 실학 등의 사상적 측면에만 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