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가 멕시코 시티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함께 방문해 보는것도 좋다. 아즈텍 문명은 멕시코 시티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호수를 메운후 그 위에 건설하였기 때문에 묻혀 파괴되거나 묻혀버렸다. 그러므로 이 도시지하에는 아즈텍 문명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깔로에서 아즈텍
유적 외에 신석기시대의 집자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집자리 유적은 정착 생활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서울 암사동 유적과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 등이 바로 조개무지 유적이 아닌 집자리 유적이다. 이런 곳에서 출토되는 토기 등의 유물들로 신석기인들이 농사나 사냥 등 여러가지 생산활동을 영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된 쌀이나 벼의 탄소 동위원소 연대추정(carbon dating) 및 기타 고고학적 증거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쌀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잡곡(피&기장&조&보리&밀 등)을 주식(主食)으로 하였으나 1천여 년 전, 즉 통일신라시대부터 벼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쌀이 우리 식생활의 커
생산에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또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농민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하천 둔치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2년치의 영농손실보상금조차 지급받지 못해 생계가 막막해졌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반대 근거는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공사현장이 문화 유적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