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2년(중종37) ~ 1607년(선조40)조선의 문신 학자이다. 서애류성룡(柳成龍)은 본래 안동부 풍산현 하회리 사람이나 태어나기는 의성현 사촌리의 외가에서, 후일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부친 류중영(柳仲 )과 모친 안동 김씨의 둘째 아들로 1542년에 탄생했다. 나면서 총명과 예지가 남달리 뛰어 났고 일찍부
Ⅰ. 개요
지리적으로 안동은 경북북부내륙 중앙에 위치한 도시로서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 지역으로서 1차 산업위주의 경제활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안동은 경제적으로는 매우 낙후되었지만, “유교의 메카”일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와 유․무형의 문화재를 다량 보유한 지역이기도
병산서원은 이런 곳...(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1613년(광해군 5)에 정경세 선생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애류성룡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후 1629년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 진공을 배향한 서원이다. 이 서원의 전신은 고려 공민왕 시절 안
1. 서원(書院)
효시 - 중종 말기(1541),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학자 안향을 향사하기 위하여 백운동 서원을 걸립한 것을 시초로 하여 전국에 설립된 사립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이었다. 선조 때 이황의 건의에 의해 백운동 서원에 소수서원이라는 명종 친서의 현판을 내리게 되었 고, 전지(田地)·노
서애류성룡 종가의 자녀교육법에 대해서 말한다. 서애류성룡은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의 공부를 세심하게 챙긴 총리로 유명하다. 서애류성룡은 바쁜 총리의 일과 중에도 자녀들에게 편지를 통해 학문을 점검하고 독려하였다. 편지에서 그는 아들들에게 퇴계 이황이 손자에게 주신 시를 본받기 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