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불사의 기원
(1) 석불사의 창건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석굴암은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 751년(경덕왕 10)에 대상 김대성이 불국사(佛國寺)를 중창할 때, 왕명에 따라 착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가탑을 만들 당시에 김대성은 당시 가장 뛰어난 석공이었던 백제인 아사달을 불러 탑을 만들게 했는데 아사달이 탑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는 동안 시간이 몇 해 흘러 고국에 있는 그의 아내인 아사녀가 남편을 그리워하여 불국사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탑을 완성하기 전까지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현재 3층 석탑 2기와 건물터만 남아있는 상태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사찰 건축 양식
동 서에 각각 탑 하나씩 짓고 가운데에 중문과 금당, 강당을 지은 형태
1개의 탑 중심이던 기존의 가람 배치 ⇒ 쌍탑 일금당 전환 최초의 형식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큰 석탑
삼국을 통합한 실질적
경주가 터를 잡은 지역은 한국의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이 산과 물을 끼고 있는 이른바 背山臨水의 분지지형이다. 동서남북으로 해발 300-500m의 낮은 山稜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산과 산 사이는 하천이 흐르고, 충적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사통팔달의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경주의 시각구조는
1. 경주와 신라 개관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통일 이전 도성 안에 흥륜사․황룡사․분황사 등의 사찰을 지었고 곧 불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문화내용에서도 불교적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통일 이후 100여 년 동안에는 불교미술의 정수로 이야기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