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저서 「에밀」 제4부 가운데 있는 ‘사보아인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의 모델이 다름 아닌 겜이었다고 한다.
19세 때부터 여기저기서 일을 하여 용돈을 마련하였으며, 음악공부를 시작하였다. 21세에 봐랑부인의 연인이 되었으며 이 무렵부터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감정을 예찬하기 시작 하였
. 1763년에는 '에밀'에 대한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보몽에 대한 변박서'를 썼으며, 1764년에는 '산으로부터의 편지'를 발표하였다. 그는 8년 간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1770년 파리로 돌아왔다. 루소의 유작(遺作)으로써 1765∼1770년 사이에 씌여진 '고백'은 1781∼1788년에 제네바에서 출 판되었다.
중 디종 아카데미 현상 모집 제목을 보고
1750년<<학문 및 예술에 관한 논문-학예론>>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사회와 문명 때문에 타락했다는 그의 사상의 중심주제를 잘보여준다. 5년 뒤 디종 아카데미의 질문에 답하는 2번째 논문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완성한다. 이것은 <<학예
, 심한 피해망상 속에서 자기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자크를 재판하다>를 썼고, 계속해서 <고독한 사상가의 몽상>의 집필에 들어갔으나 완성을 못한채 1778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로는 <에밀>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언어 기원론> <신(新) 엘로이즈> <민약론> <고백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