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외교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반제.반미 공동전선’의 구축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획득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음
접근방법
평화공존노선 표방, 반제.반식민주의 및 민족해방투쟁지원 선전, 국제공산주의 선전기구 가입, 인민외교, 문화 및 경제교류 등
비동맹
외교관계는 1950년 후반에 시작되었다 전동진(2003)『냉전시대 아프리카 공산주의 체제의 형성구조와 소련 및 북한의 영향력』통일전략 제3권 제2호. Ⅲ. 아프리카 국가들이 마르크스-레니니즘을 채택하게 된 외재적 요인: 소련의 세력 확대와 북한 및 쿠바의 지원 pp.262
), 중국은 1955년 반둥회의에 참여
북한은 90년대 이후 중진국형 산업구조에서 1차 산업 위주의 ‘후진국형 산업구조’로 뒷걸음질 쳤다.
김일성 사후, 체제안정화와 경제회복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남한과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이 이루어지며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경제건설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지
관계에서 중요하게 나타난다. 중국과 직접적인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한반도, 월남, 인도-파키스탄과의 관계역시 중국 외교정책의 변화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러한 중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특징은 세계 정치의 한 세력균형자로서 냉전기간동안 미-소의 지배적 위치를 상대화시켰다는 것이다.
그것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편가르기식의 외교를 펼치게 되면서 자신에게 편승하는 동맹국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목적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여 진다. 냉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전투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간의 견제와 대응 속에서 차가운 평화의 상태를 유지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