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화리, 남쪽은 종달리, 그리고 북쪽은 해안과 연접하여 있으며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 52′, 북위 33° 21′에 해당된다.
[형태]
별방진은 둘레 2,890척(960m), 높이 7척의 타원형 성으로 전체적인 지형은 남고북저이다. 동·서·남문은 1칸씩의 초루(礁樓)가 있었고, 성 안에는 진사(3칸), 객사(3칸), 공수(3칸)
1. 머리말
제주도를 어떤 이는 눈물과 한숨의 섬이라 하고 어떤 이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섬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까지 낳게 한 이 섬은 옛날에는 문명 생활과는 동떨어진, 말(馬)이나 자라기에 알맞은 척박한 곳으로 알려졌다.
세화리 2차 해녀 시위
원인
-1차 시위에서 제시한 해녀들의 요구 조건을(지정 판매의 철폐) 해결 하지 않고 약속을 어김으로 시작
내용
-1932년 1월12일 해녀 900여명이 일시에 모여들어 세화리 장으로 행진
-경관과 주재소원들이 해녀들을 위협했지만 해녀들은 더욱 강렬하게 시위함
-해녀들은 결국 도
세화리 출신으로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전선(富士電線) 그룹을 창업했다. 고인은 1984년 제주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제13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개최될 당시에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교민사회에서 적극적인 모금운동을 펼쳐 8억3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기탁 했다. 이와 함께 1988년 서울올림픽
중면(현재 서귀포시) 농민들은 ‘납세불납동맹’을 조직하여 세금 납부와 뽕나무 묘목 강제 배포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고, 1931년 11월 7일에는 제주시 산지축항공사장 노동자 40여 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1932년 세화리 ‘잠녀항쟁’은 당시 가장 격렬했던 반제투쟁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