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道의 성립
『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三韓을 통합하고 비로소 東南海道部署使를 두었다고 하였으며, 그 후에 慶尙晋安東道, 慶尙州道, 慶尙道 등으로 각각 고쳤으나 그 개칭의 연대는 미상이다”고 하였다. 그 개칭의 연대에 관해서 『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대략 아래와 같이
속읍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 강주가 순안현(順安縣)이 되어 현령이 파견되자 흥주도 이에 예속되었는데, 순안현은 1259년(고종 46) 김인준(金仁俊)의 공으로 인해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되었다.
흥주와 기주는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흥주는 충렬왕 때 흥녕현(興寧縣), 충숙왕 때 지흥
1-2) 서희의 사회진출
서희는 18세의 나이로 광종 11년에 치러진 과거시험 갑과로 발탁되었다. 아버지 서필이 내의령인데도 불구하고 음서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아버지가 당 대표 국회의원인데 굳이 공천을 받지 않고 지역구 의원으로 나와 선거를 치룬 격이다. 당시 시대배경으로써 광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