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위대한 학자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답게 정치, 경제,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의학, 교육학, 군사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학자 송재소, 『다산시선』(창작과 비평,1991), 서문
1. 생애
부친 정재원은 남인파의 양반으로서 일찍부터 벼슬하여 지방수령을 역임하였으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참사를 계기로 관직을 물러나, 향리에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4세 때(1776) 아버지가 호조좌낭(戶曹左朗)으로 다시 기용됨에 따라 서울로 올라온 다산은, 16세때에 이미 실학자
소리 그치지 않네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묵어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 곳에 깃들지 않니?”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오.”
<송재소 옮김>
燕子初來時(연자초래시)
송재소, 극작가 안종관, 국문학자 윤영천, 민현기 등을 만나게 되다. 이 해 군사정권이 유신체제로 들어가 정국이 삼엄했다. ★1974년 한학자 우전 신호열 선생의 문하에서 두보를 들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자유언론투쟁이 벌어지면서 문인들이 광고탄압에 맞서 함께 싸우는 가운데 자유실천문인
송재소, 극작가 안종관, 국문학자 윤영천, 민현기 등을 만나게 되다. 이 해 군사정권이 유신체제로 들어가 정국이 삼엄했다. ★1974년 한학자 우전 신호열 선생의 문하에서 두보를 들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자유언론투쟁이 벌어지면서 문인들이 광고탄압에 맞서 함께 싸우는 가운데 자유실천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