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는 재모와 시가의 두 조항에 들어 마하였다. 말하자면, ꡐ출중한 재주ꡑ와 ꡐ경국의 미색ꡑ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한시와 시조․노래에도 뛰어난 명기를 꼽았다.
이러한 황진이인데도 그녀의 생몰 년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김지용의 『역대여류한시문선』(1973)의 「황진이
황진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전에서는 황진이를 “이조 전기의 여류 음악가, 중종 때 개성의 이름 난 기생이며 노래명창이다”라고 설명하면서 다른 이름은 황진랑이며 기명은 명월로 소개하고 있다. 황진이의 출생
황진이는 남한의 작가 전경린, 김탁화, 최인호 그리고 북한 작가 홍석중에 의해 남과 북 모두에서 소설화된 인물이며 최근에는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황진이는 생몰연대 미상의 조선 중종 때 명기(名妓)이다. 개성 출신으로 본명은 진(眞) 일명 진랑(秦
Ⅰ. 서론
시조는 오랜 전통을 지닌 한국의 고유시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유산이 깃들어 있다. 시가를 사상·감회·정조 등을 운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때 그 작품 속에 담제나 내용도 개성에 따라 다양성을 띄고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특정의 작가 층
(1) 無常(무상)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의 시조
이 시조는 황진이가 자신의 스승이었던 서경덕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것이다. 산은 자연을 뜻하며 이는 변하지 않으나 사람의 인생을 나타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