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1년 노태우 정권 말기, 시위 진압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며 전 국민적 집회와 시위가 각지에서 발생하는 등 집권세력은 절체절명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때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사설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
시첩」등을 발표한다. 이때부터 그는 인간의 고독이나 허무 같은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가 나고 자라면서 줄곧 그의 정신형성에 영향을 미쳐온 것 중의 하나가 기독교다. 그의 시 속에 절대적 타자인 신을 확인하고 그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