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신문발행등록 자율화 이후 신문시장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신참진입이 허용되어 신설 신문사가 시장에 참여하면서 일종의 카르텔에 의해 묶여 있던 발행면수 제한이 깨졌다. 선발 신문사는 후발 신문사의 시장침투를 봉쇄하고, 또 선발 신문사끼리는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증면경쟁이 치열
신문시장의 역사
근대신문이 발행되기 전부터 조보 또는 기별이라 불리는 관보성격의 필사신문이 있었다. 이 전근대적 신문 형태의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 또는 15세기 무렵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을 각 관청의 기별서리들이 손으로 베껴서
시장이 과점 중앙지를 중심으로 편중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있다.
광고주, 광고대행사도 서울에 몰려있고 구매력도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 광고시장 역시 서울집중 현상이 심각하다. 대기업 광고주는 지방신문에 대해 연간광고계획에 따라 창간기념 등에 예산을 배정하는 정도이다.
신문은 문을 닫고, 논조가 비슷한 신문들은 합병을 하고, 일부 중앙일간지는 지역지로 전환할 수도 있다. 시장합리화를 꾀한다면 한국신문은 여전히 성장하고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
문제는 한국 신문들이 근본적인 구조개선을 추진하거나 시장경쟁의 논리로 신문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보다는 과거
신문경영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헌법적 책임에 속하는 일이다. 사회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합리화와 구조조정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신문업만 예외로 남겨져 있어서는 안된다.
Ⅱ. 한국 신문시장의 역사
근대신문이 발행되기 전부터 조보 또는 기별이라 불리는 관보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