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부정했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한국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1945년 12월에 개최 모스크바3상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주요 내용으로 임시 정부 수립, 신탁통치, 미소공동위원회 설치를 결의하게 된다.
먼저 제출한 안건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소련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그 결과, 12월 27일 미국과 소련이 공동위원회의 건의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며, 남북한 지역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2주 안으로 한국에서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한 모스크바
통치에서 다국신탁통치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대외 정책의 기조 위에서 대한 정책은 동북아시아 지역체제라는 범주 하에서 구상되는 대 중국․대일본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구상은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운동으로부터 방위한다는 기본적인 전략을 전제로,
정치적
- 해방 이후 민족의 시대적 소명 : 통일된 독립 국가건설
- 11월 하순, 중경임정 요인들 귀국 → 중경임정 추대운동 발발 및 좌우대립
- 정당 난입 시기 : 한국민주당(송진우),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승만),
한국독립당(김구) 등
- 모스크바3상회의로 인해 좌우대립
저서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1)』이다. 이 연구는 국내 자료를 사용하는데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미국정부와 미군정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였다는 점에서나, 미국의 신탁통치 실시 주장의 배경을 포함한 미국과 미군정의 대한정책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