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12월3~5일)를 끝으로 씨름단도 문을 닫는다. 29일 동료들과 함께 한국씨름연맹을 항의방문한 그는 “비참합니다”라는 말로 작금의 심정을 대신했다.
부산 경원고 2년때 씨름을 시작한 그는 성공한 스포츠 스타를 꿈꾸며 체육기사를 즐겨 읽었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 심정수가 4년간 60억원에 삼
씨름과는 대조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90년대초 경제 불황과 함께 격투기 강국 일본인만큼, K-1 이나 Pride 같은 격투기 단체들이 성장함에 따라 많은 팬들을 격투기에 빼앗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국민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세운 스모는 많은 이벤트를 통해 스모를 더욱 알리기 시작하였고 스모선수들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감독, 선수와 잦은 인터뷰를 하는 등 MBC-ESPN을 통해 재미있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경기장도 공기를 넣어 안전하고 설치가 용이하도록 새롭게 개발하였고, 샅바싸움 등의 분쟁도 감독, 선수들을 교육시켜 많이 해소 시켰으며, 기술 씨름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하였다.
씨름대회가 열리었다. 그 후 씨름에 대한 점점 높아지는 열기와 관심은 1927년 조선 씨름 협회가 창단되면서 1927년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 를 휘문 고등학교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34년 제 6회 대회가 최종대회가 되어 버렸고, 2년 후인 1936년 다시 ‘제1회 전조선 씨름선수권 대회’를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