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의 영토는 확장되었음. 과거 UN 분할안
에 의한 이스라엘의 영토 크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56%이었으나,
휴전 후 이스라엘-아랍간의 국경재조정은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어 팔레스타인 영토의 80%를 확보하게 됨.
-여기에는 신예루살렘 지역도
중동지역의 석유를 지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음.
1915년 10월 이집트 주재 외교관이었던 맥마흔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아랍인들이 반 터키 운동을 일으키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당시 아랍의 지배자였던 후세인에게 “게릴라 전문가인 로렌스를 도와 전쟁에 협력해 준다면 전쟁 후에 아랍
중동전쟁의 아랍측의 대패는 아랍국가들의 반성을 촉구했으며, 아랍은 단결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제3차 중동전쟁에서 가자지역, 구예루살렘지역, 요르단강 서안지역, 골란고원, 시나이 반도의 8,600㎢가 새로이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들어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다. 이들이 국가를 수립하면서 이 지역에 살았던 아랍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이를 통해 비롯된 팔레스타인 분쟁은 1948년에서 1979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을 겪어왔다. 이스라엘이 점령 지역의 일부를 팔레스타인에 이양하는 것에 합의하는 등 평화적 해결 노력을 보
나라가 가진 국제정치적 지위가 결코 단순하거나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시리아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시리아의 역사를 시리아의 정치에 방점을 두고 시리아의 전제를 주도한 바아스당과 군부통치에 관해 살펴보면서 시리아라는 국가를 이해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