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중국은 하나의 나라이지만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여 이들을 개념적으로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무리가 따른다. 그러므로 중국과 중국문화에 대한 연구는 마땅히 각 지역에 대한 분석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국의 여러 지역 중 호남성(湖南省)은 중
악록(岳麓) 허성(許筬), 하곡(荷谷) 허봉(許篈),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아우로 출생하였다. 허균의 일대기를 짚어보면 허균의 생애의 몇 특징이 뚜렷이 엿보인다. 『홍길동전』에서 탐관오리 징치와 징치를 보여주는 사상은 허균이 처한 시대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을 확실하다. 허균의 전기적
악록서원을 재건하고 동문서원을 세웠으며, 제자를 가르치고 자신도 공부하기 위해서 한천정사, 무이정사, 죽림정사를 세웠다.
주희는 65세에 황제의 시강이 된다. 주희의 일생 동안 가장 높은, 그리고 중요한 직책에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한탁주의 방해로 직책을 그만두며, 주희의 학문이 위학으로
대한 탐구
일단, 허균의 생애사의 중요 사항을 연도에 따라 나열해보자면 다음과 같이,
1569 (1세, 선조 2년)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3남, 악록(岳麓) 허성
(許筬), 하곡(荷谷) 허봉(許),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아우로
출생.
1580 (12세, 선조 13년) 부친 별세
1585 (17세, 선조 18년) 김대섭(金大涉)의 2녀와 결혼
악록 허성(許筬), 하곡 허봉(許 ), 그리고 부친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문장이 빛나고 있어 난향유곡(蘭香幽谷)과 같은 마을이다. 초당마을 입구에는 작은 규모나마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의 시비공원이 조성돼 두개의 시비와 함께 남매시인의 가계와 행적을 기술한 비석이 겹겹으로 늘어 서 있어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