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열투쟁의 시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특별히 배일사상을 갖고 있지 않던 안중근은 전쟁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 야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한 것이 결코 한국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한국을 병합하여 대륙침략의 발
안중근은 비단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애국 충정에의 기개를 떨친 인물일 뿐만 아니라 교육 계몽 운동에 앞장서서 민중을 교화하고 직접 헌신하여 의병 투쟁의 선봉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우리나라 국권을 탈취한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 만주의 “하얼빈”에
. 이후 1905년 을사늑약과 이후 강제병합 과정을 지켜보며 교육사업 등 계몽운동만으로는 역부족을 느끼고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마침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의 원흉으로 조선 초대 총독 이토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1909년 저격에 성공한다.
안중근은 “세계의 대세를 짐작하고 해외에서 신호읍을 하는 자 어찌 무모하게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자가 있을 것인가. 이등박문의 정책이 동양평화에 지대한 해를 끼치는 일에 一身 一家를 돌볼 여지가 없이 결행한 것”이라며 의거의 명분과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토히로부미와 아무런 개
1. 머리말
안중근은 “세계의 대세를 짐작하고 해외에서 신호읍을 하는 자 어찌 무모하게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자가 있을 것인가. 이등박문의 정책이 동양평화에 지대한 해를 끼치는 일에 一身 一家를 돌볼 여지가 없이 결행한 것”이라며 의거의 명분과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토히로부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