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 독일 및 동맹군은 항복의 길을 걷게된다.
4. 카이로회담
제2차 세계대전 때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개최된 회담이다. 1차는 1943년 11월 22일에서 26일까지, 2차는 1943년 12월 2일에서 7일까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이 추축국측에 불리하게 진행되면서,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드디어
ꋮ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
1943년 11월 루즈벨트·처칠·장개석이 카이로에서 회담을 열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 등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그 직후의 테헤란 회담에서 루즈벨트·처칠·스탈린 간에 독일을 무조건 항복시키기 위한 제 2전선(연합군의 유럽본토 상륙작전 등)형성 등의 작전이
포츠담 선언
1945년 7월에 미국, 영국, 소련의 대표들이 포츠담에서 회담하여, 일본에 대한 전쟁 종결의 조건을 포츠담 선언으로 발표하였다. 이 선언에서 연합국 수뇌들은 무조건 항복을 결의하고 일본의 영토를 연합국측이 결정하는 그 부속 도서로 한정하였다. 한국의 독립이라는 문구는 없지만 연
카이로회담카이로회담은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연합국 대일항전과 전후 처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한 최초의 회담으로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영국총리 처칠, 중국총통 장제스가 참석하여 대(對)일본전쟁 수행 협력과 전후의 영토에 대하여 의논하여 2
1945년부터 48년 사이의 이른바 `해방정국‘은 미․소 양군이 각기 남과 북으로 진주하여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군정을 펴나감으로써 남북 간의 대립구도를 원초적으로 형성한 시기이다. 남쪽에서는 미국이라는 외압력이, 북쪽에서는 소련이라는 외압력이 힘의 축을 주도하게 되었던 미소군정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