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를 감금하게 되는데, 히틀러는 이탈리아가 동맹에서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하여, 무솔리니를 구출하는 작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역사에 큰 획을 남기지는 못했고 그 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독일로의 진격으로 인해 독일 및 동맹군은 항복의 길을 걷게된다.
4. 카이로회담
제2차
ꋮ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
1943년 11월 루즈벨트·처칠·장개석이 카이로에서 회담을 열어 일본의 무조건 항복 등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그 직후의 테헤란 회담에서 루즈벨트·처칠·스탈린 간에 독일을 무조건 항복시키기 위한 제 2전선(연합군의 유럽본토 상륙작전 등)형성 등의 작전이
체결된 평화 조약들의 결렬과 관련이 있었다. 이 조약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낳은 열광과 증오심을 해결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는데, 즉 평화회담에 참여한 전승국들의 많은 무리한 요구들은 새로운 비탄과 갈등의 씨앗을 낳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전개 과정
-독일의 폴란드 침공
독·소 불가침 조약은 세계를 전쟁 국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히틀러는 계획대로 폴란드를 침공하려 했다. 1939년 8월 31일 밤, 독일의 소도시 글라이비츠의 한 방송국에 무장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독일군과 짧은 총격전을 벌였고, 얼마 뒤 방
이탈리아 3국도 전쟁피해와 막대한 전쟁비용으로 피폐해졌다. 한편 미국과 일본이 대두함으로써 자본주의세계의 내부구조는 크게 변동하였다.
최강의 자본주의국가가 된 미국이 고립주의로 전환한 것은 세계정치와 세계경제에서 최대의 발언권을 유보하려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련은 전후처리